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 유강희

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유강희

 

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생각해낸 건

이 나무 근처에 오리나 치며 살아야겠다 였다

더 불리지도 더 줄이지도 않으며

내 힘 닿은 만큼의 마리 수를 놓고

소란하면서도 다정한 오리 울음을

하루치의 양식으로 삼아야겠다 였다

내가 두 번째로 대팻집나무를 보았을 때 불꽃처럼 퍼뜩 생각해낸 건

저녁이 올 무렵, 제일 높은 가지 끝

등불 하나 내걸고 꽃집나무, 물소리집나무,

귀뚜라미집나무, 혹은 눈발집나무란 것도

세상에 있나 직접 찾아봐야겠다 였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 세 번째로 대팻집나무를 보았을 때 생각해낸 건

나도 어느새 눈 귀먹은 한 마리 늙은 당나귀 되어

외딴집 저녁불빛집나무가 되어봐야겠다 였다

저녁 불빛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눈감는지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나무가 되어보는 거였다

 

*대팻집나무: 대팻날의 집을 만드는데 주로 이 나무가 사용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

 

읽고 나면 갑자기 나는 정말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생각하게 만드는 시다. 나중에라도 어떤 모습으로 진정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살고는 있을까… 상상해보게 되는.  세상일 다 내려놓고 한없이 편안해서 오히려 한없이 쓸쓸한 노년의 모습은 자꾸만 새로운 나무의 이름을 붙여주는 시인이라서 더욱 그런가 보다. 유강희 시인은 198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