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마광수

늙어버린 여배우의 모습은 나를 슬프게 한다.

늙어버린 나의 모습도 나를 슬프게 한다.

그리고 내 방안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이혼한 옛 아내의 립스틱이 먼지에 덮여있는 것을 볼 때.

대체로 사랑은 나를 슬프게 한다.

특히 내가 사귀고 있는 여인이 오럴 섹 스를 싫어할 때.

힘주어 섹 스하는데도 페니 스가 서지 않을 때.

아무도 내가 쓴 문학작품을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그래서 지쳐버린 내 표현욕구가 울고 있을 때.

내 작품을 출판하지 못하겠다는 글귀가 씌어 있는

출판사에서 온 편지를 읽을 때.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옛 연인의 편지.

그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어 있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이 저를 버린 걸로 인해

제가 얼마나 죽고 싶었는지……

그때 내가 그녀에게 한 짓이 무엇이었던가.

치기 어린 사랑의 장난, 아니면 사랑한다는 달콤한 거짓말,

오로지 그녀의 성 기에 정 액을 배설하려고

그녀를 꼬득일 때 거짓으로 속삭였던……

이제는 그 숱한 사랑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

늙디늙은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나의 성욕이 철없이 불타오를 때.

명예욕을 못 채워 초조하게 서성이는 나의 모습 또한

나를 슬프게 한다.

아니, 그보다도 언제나 여학생들을 훔쳐보며 강의하는 나,

관능적 외로움에 가득찬 나의 찝찝한 자 위행위,

섹 스에 굶주린 끝에 찾아오는 한없는 고독감,

미칠 듯한 로리타 콤플렉스의 주책없는 불타오름.

심수봉의 슬픈 가요. 내가 좋아했던 여배우 한채영의 결혼.

절친했던 친구의 배신, 학계와 문단에서의 집단 따돌림.

야하면서도 우울한 언어에 침잠하는 작가밖에 될 수 없었던 나.

그리고 내가 잊혀진 작가가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

——- 이런 모든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성추행, 성폭행의 기사를 읽을 때 피의자는 그냥 사람이 아닌 걸로만 치부했는데 이 시를 읽으니 그것이 외로움에서 비롯되었다는 변명을 듣는 것 같다. 적나라하고 19금인 이 시가 60년대 강우석의 시만큼은 아니더라도, 우유를 뿌리며 ‘제제’를 성문화에 갖다 붙이는 맹랑한 여가수가 아니더라도… 그 속사정을 엿본 거 같다.

마광수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는 책으로 유명세를 치른 고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