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
꽃잎이 떨어져 명주바람에 풍장을 치르고
안으로 삼킨 쓸쓸함이 공명이 되어
발자국 닿는 곳마다 높은 음자리표 현을 뜯는다
꽃잎은 스스로 바람이었다가
시간이 뜯어 먹고 버린
밤하늘에 빗금치고 떨어지는 유성별이다
바람 부는 날은 파도소리였다가
비 오는 날은 늙은 어머니 콩대 터는 소리다
아카시아 꽃은 오솔길에서
짓무르다가 분분한 가루가 되어 흩날리다
꽃의 유적이 되어
空의 지경으로 투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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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게도 꽃과 바람과 비와 파도 같은 흔한 소재들을 모두 모아놓은 이 시가 전혀 지겹지 않은 까닭은 낱말의 사이에 연결된 낯선 매력을 가진 표현들 때문이다. 꽃잎이 이렇게도 태어나는구나…오래도록 시어를 손보는 시인의 자세에 고개가 숙여진다.
김인수 시인은 2008년 ‘문학 바탕’으로 문단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