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의 시제

 

이병일

 

  희고 붉고 차고 맑고 그러나 밝고 어두운 꽃잎들은 영생을 누리려 애쓴다

 

  어떤 빛의 두통과 권태가 높이높이 떠 있기에 저토록 꽃잎의 부레가 빛날까

 

  오늘은 연못을 파고 수련을 넣고 물고기를 넣고 돌덩이가 아닌 꽃나무로 둘레를 친다—그러니까 꽃잎이라는 시간은 연못의 귀퉁이를 여러 번 깎아 空과 色을 키운다

 

  연못에 기대어 사는 사람의 쓸쓸함이 야위고 야윈다면, 나는 꽃잎에 대한 오랜 명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꽃잎은 속이 다 비치지 않지만 운명을 파괴하는 향기가 숨어 있다 꽃잎으로 인해 죄악을 부추기고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던 왕의 쓸모없는 기록도 있다 그러니까 꽃잎에게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가지 말자

 

  애써 생각지 않아도 나는 꽃잎이라는 것들은 우물로 긴 숨을 쉬고 있음을, 그 우물 속엔 천지간을 운행하는 별이 잉태되었기에, 꽃잎이 자주 어두워졌다가 밝아진다고 믿었다

 

  매화 꽃잎, 한 잎 한 잎 지는데, 꽃잎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나를 생명의 세계로 빨아들인다

 

시인은 연못을 파고 꽃을 심으면서 우주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꽃은 피어서 시인의 눈을 지나 가슴을 지나 삼라만상을 실어 나른다. 오랜 명상 탓일까 독자에게도 또한 봄의 생명을 전해주는 시 한편이 예사롭지 않은 봄날이기도하다. 이병일 시인은 2005년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그리고 시모임 ‘뒤란’ 동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