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등본

 

신용목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몸에다 화살을 걸고 깊은 날은 갔다 모든 謀議가 한 잎 석양빛을 거느렸으니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家長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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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염전이었던 갈대밭에서 시인은 저무는 석양을 본다. 아버지가 그랬고 또 내가 그렇듯이 사는 것은 새처럼 바람을 타는 것이다. 갈대는 바람을 타고 그 바람은 통증을 불러오는 유전자가 있다. 그래서 ‘등본’이다.  신용목 시인은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