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속에서 길을 잃고 너는 쓰네
성미정
애초에 이 가방을 선택한 것이 너의 실수인지도
모르지 너의 무지처럼 무지막지하게 커다랗고
크고 작은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가방
오사카 신사이바시에서 간식으로 산 도리야끼가
두달 동안 들어 있던 가방
그런데도 찾지 못하고 까맣게 잊어버린
무슨 고래 뱃속 같은 가방
온갖 주머니가 내장처럼 달린 이 가방
생기고 나서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지
핸드폰 생기고 전자수첩 생기고
사업자등록증 생기고 명함도 생겼지
매일매일 크고 작은 주머니를 빠짐없이
채워주기를 바라는 이 가방
넣어도 넣어도 만족할 줄 모르는 이 가방
어느 날 이 가방이 너를 삼켜버린다 해도
전혀 이상할 건 없으리
이 가방의 커다란 자크는 충분히 이빨이
되고도 남으니
어쩌면 매일 이 가방 속에 뭔가를
채워 넣느라 아둥바둥 살다 쓰러지느니
차라리 네 한 몸 이 가방 속에 던져
버리는 것이 쉬울지도 모르리
소화되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테니
그동안은 쉴 수 있을지도 모르니
성미정 시인의 시들은 시니컬하다. 그리고 솔직하다. 무심하게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것에서 욕망의 걷잡을 수 없는 파괴력을 간파해낸다. 자꾸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그것에 적응하느라 지쳐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시를 보면서 요새 유행하는 큰 가방, 때로는 명품 상표를 달고 그 자크가 악어의 이빨이 되어 약한 사람들을 물어뜯는 상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