畵家 뭉크와 함께
이승하
어디서 우 울음소리가 드 들려
겨 겨 견딜 수가 없어 나 난 말야
토 토하고 싶어 울음소리가
끄 끊어질 듯 끄 끊이지 않고
드 들려와
야 양팔을 벌리고 과 과녁에 서 있는
그런 부 불안의 생김새들
우우 그런 치욕적인
과 광경을 보면 소 소름 끼쳐
다 다 달아나고 싶어
도 同化야 도 童話의 세계야
저놈의 소리 저 우 울음소리
세 세기말의 배후에서 무 무수한 학살극
바 발이 잘 떼어지지 않아 그런데
자 자백하라구? 내가 무얼 어쨌기에
소 소름 끼쳐 터 텅 빈 도시
아니 우 웃는 소리야 끝내는
끝내는 미 미쳐버릴지 모른다
우우 보트 피플이여 텅 빈 세계여
나는 부 부 부인할 것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 시는 그 당시 게으르게 은유하던 문학인들과 독자들의 정신을 일격에 깨우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프로이드의 억압되어있는 무의식이 발표된 즈음에 유럽의 문화는 뭉크라는 화가를 통해서 까닭을 알 수 없는 공포를 형상화 시켜 세상에 보여주었다. 뭉크의 ‘절규’는 이 시에서처럼 목구멍 밖으로 터져나오지 않는 절규다. 어떤 끔찍한 상황이 화자를 이토록 더듬거리게 만들었을까? 마치 노신의 ‘아Q 정전’의 공포를떠올리게도 한다. 그리고 외치고 싶은 자는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의 몰골이 아니다. 외돌아서, 과연 우리는 하고싶은 말을 다 외치고 사는가… 세상에 질식당한 나약한 인간의 얼어붙은 절규는 또한 어떤가. 꼭 세기말과 전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