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4. 한의학과 촌철살인(寸鐵殺人)

한의학의 대표적인 치료법을 말할 때 흔히 “1침2구3약”이라 한다. 이는 침, 뜸, 한약을 자칭하는 것이다.

침은 환자에게 바로 적용할 수 있고 그 반응 역시 바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침을 놓자마자 통증이 소실된다거나 마비가 풀리거나, 부동(不動)의 근육이나 골절을 움직일 수 있거나, 막혀있던 말문이 트이거나, 여러 날 동안 보지 못했던 변이 풀리거나 체기로 인하여 정체된 위장이 움직이는 것 등이다. 병의 경과가 급성이거나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에는 그만큼 침의적응 증이 많고 효과 또한 눈앞에서 바로 볼 수 있을 때가 많다.

뜸은 침에 비하여 한번 치료에 걸리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뜸을 표현하는 한자어인 구(灸)는 오랠 구(久)와 불화(火)의 합성어이다. 그만큼 약한 불을 오랫동안 신체에 적용한다는 의미를포함하고 있다. 밥을 짓거나 음식을 삶을 때 센 불을 이용하여 찌거나 익히고 나서 뚜껑을 열지 않고 일정기간 동안 그 열기를 유지하게 하는 ‘뜸을 들인다.’라는 표현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라 생각된다. 뜸이란 그만큼 상당기간 동안 열 자극을 요구한다.

한약은 침, 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복잡하거나 오랜 치료기간을 요하는 병에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침과 뜸도 장기간 적용해야 할 경우도 있고 한약 또한 감기나 음식에 체기(滯氣) 등 병에 따라서 짧은 기간에도 효과를 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만성적으로 진행된 병이나 오래된 허손(虛損)을 물질적으로 보해주는 것에는 한약이 가장 대표적이며 침과 뜸을 병행해서 적용하면 치료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는 말이 있다. 아주 작디작은 침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과 통한다. 인체의 생리와 병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없이 단순히 “무슨 병에 어느 혈(穴)”이란 전병전방식(專病專方式)사고로 시술한다면 결국 병을 악화시키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뜸도 마찬가지다. 뜸은 한의학의 주된 치료도구 중 하나로 몸을 덥혀주고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고 면역력을 증강시켜줄 수는 있지만 결코 모든 병증에 적용될 수 없다. 반드시 체질과 증상에 맞게 적당한 정도로 써야 한다. 인체는 작은 우주(宇宙)에 비견된다. 그만큼 복잡다단하며 온몸의 장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인체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의료인에게 생명을 다룰 수 있는 면허를 주는 것은 권한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을 지어 주는 것이다. 침과 뜸 그리고 한약 역시 한의사가 사용할 때만이 그 가치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