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이승하

오죽했으면 죽음을 원했으랴
네 피고름 흘러내린 자리에서
꽃들 연이어 피어난다
네 가족 피눈물 흘러내린 자리에서
꽃들 진한 향기를 퍼뜨린다

조금만 더 아프면 오늘이 간단 말인가
조금만 더 참으면 내일이 온단 말인가
그 자리에서 네가 아픔 참고 있었기에
산 것들 저렇듯 낱낱이

진저리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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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가 뭉크와 함께’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승하 시인을 기점으로 한국 시는 ‘미래파’라는 이름을 붙여서 좀 더 과감하고 또한 대단히 자폐적인 성격을 가진 시들을 눈 여겨 보기 시작했다. 광기와 폭력의 80년대 시발점인 광주를 떠올린다면 그의 시가 왜 고통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 순간에도 꽃이 핀다는 사실이 왜 이토록 기가 막힌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