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 읽는 소설 5 – 멋진 정우 엄마 VS 불쌍한 우리 엄마

벌써 저만치 엄마는 마을 사람들이 쌍둥이네라고 부르는 광열 아저씨 집에 거의 다 도착이다. 쌍둥이 언니들이 있는 집이라 쌍둥이네다. 쌍둥이 언니네는 식구도 많고 소도 많다. 쌍둥이 언니와 태연 언니 그리고 나와 동갑인 정우 그 아래로 정아까지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는 집이다. 쌍둥이 언니들은 중학생이라 나와 정우가 보기에도 엄청 어른 같아서 친해지기는 조금 어렵다. 태연 언니도 키가 큰 게 꼭 중학생처럼 느껴져 말을 걸기가 쉽지 않다. 대신 정우와 정우 동생 정아와는 같이 술래잡기와 비석치기도 하는 제법 친한 사이다. 정우네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에 다섯 남매까지 삼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다.

거기다 집 옆에 있는 우사에는 꼭 거대한 달마티안같이 생긴 우유가 나오는 젖소들도 아주 많다. 한 스무 마리도 넘는 것 같다. 솔직히 정우네 집에 도착하기 몇 미터 전부터는 젖소들의 똥 냄새 오줌 냄새가  진동한다. 그래서 정우네 집안에 들어가 본 적은 몇 번 안 된다. 젖소들이 산다는 우사에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 우사에 가려면 정우네 집 근처에서 맡은 똥 냄새 오줌 냄새보다 백 배는 더 심한 걸 참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젖소들이 몸을 움직이기라도 하면 분명히 그 불똥이 아니 그 똥과 오줌이 나에게 튈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직 그런 대범함은 없는 것 같다. 젖소가 궁금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웬만한 용기 없인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정우 엄마는 정말 용기가 대단하시다.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큰 정우 엄마가 젖소에게 먹일 여물이 든 수레를 끌고 우사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나는 정우 엄마가 정말 멋지고 씩씩한 아줌마라고 생각하곤 했다. 마음속의 우상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처럼 말이다. 정우는 친구라서 아직 아줌마에게 내 마음을 말하지는 못했다. 왠지 친구 엄마를 동경한다는 게 꼭 정우처럼 엄마를 갖고 싶은 마음처럼 보일까 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튼 그래도 정우 엄마는 참 멋지다.

광열 아저씨는 약간 대머리에 아래턱 주변으로 검은 수염이 덥수룩한 꼭 만화영화에 나올법한 인상이다. 정우 아버지가 내 눈에는 용맹한 전사 같다. 발부터 어깨까지 온몸이 한 번에 들어가는 특별한 복장을 하고 우사에서 아주아주 고약한 소 똥 냄새 소 오줌 냄새와 맞서 싸우는 모습이 그렇다. 인내심이 보통 아닌 강한 용사만이 매일매일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우 아버지도 정우 어머니도 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주변에는 모두 논농사 밭농사 농사짓는 분들만 계시다. 그런데 정우네 부모님은 우리 마을에서 매우 독특한 일을 하신다. 어린이에게 좋다는 우유를 만드는 일을 하다니 그건 정말 아무나 할 수 없지 않은가. 우유를 많이 마시는 어린이가 키도 크고 몸도 튼튼해진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어린이가 잘 자라야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된다고 교회 목사님도 말씀하셨다. 어린이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일을 하는 우리 마을의 유일한 어른들이 정우 어머니와 아버지다. 그래서 내 생각엔 정우 부모님이 참 훌륭한 분들 같다. 그런 부모님의 아이인 정우가 가끔씩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부모님이 꼭 우유를 만드는 일을 하진 않아도 된다. 부모님은 같이 살면서 같이 밥 먹으면 된다. 부모님이 같이 산다면 집에서 아무리 지독한 소 똥 냄새 소 오줌 냄새가 난다 해도 그 집이 좋을 것 같다. 엄마가 끓여주는 구수한 된장찌개 하나면 고약한 냄새 따위는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외할머니 된장찌개도 맛있지만 엄마 된장찌개가 먹고 싶은 날도 있는 거니까.

나는 한 번 생각에 빠지면 거기서 빠져나올 줄도 알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지금도 광열 아저씨네 집에 다다른 엄마를 주춤주춤 쫓아가는 중인데 그 사이 별생각을 다 했다.

이번엔 광열 아저씨의 어머니이자 정우 할머니가 먼저 엄마를 반긴다. 집 옆에 딸린 밭에서 김매던 정우 할머니는 엄마를 보자마자 호미며 장갑을 죄다 던지곤 달려오신다.

“아이고 야야 승희 왔구나. 자주 좀 오지. 그래 너도 사느라 그리는 못 오지. 다 안다. 이리 오니까 얼마나  좋니. 아이고 승희야. 네 자식도 보고. 아이고 좋다. 잘 했다. 승희야.”

정우 할머니는 한 오십 보 떨어져 뒤에 서 있는 나를 힐끔 보고는 눈도 자꾸 깜빡깜빡하신다. 옷소매로 코까지 닦으면서 나 한 번 엄마 한 번 번갈아 보시곤 아이고 소리만 반복하신다.

“네. 이따가 산소에도 가고 작은 아버지 식구들도 다 오시면 북적북적할 거라 겸사겸사 왔다 가려고 왔어요. 온 김에 마을 한 바퀴 돌고 인사드리니 좋네요. 건강하시죠? 무릎이 많이 아프신 거 같은데 아직도 이렇게 밭에 쭈그려 앉아서 일하시면 안 돼요! 아줌마가 아프시면 어떡해요. 아저씨 중풍으로 누우셔서 한 쪽 몸도 못 쓰시는데 아주머니가 건강하셔야지. 쉬엄쉬엄하세요. 이제 연세도 있으시고.”

정우 할머니도 망태 할아버지처럼 똑같이 하신다. 당신 손을 엄마 손등 위에 올리고 비비고 비비고 또 툭툭 치신다. 옷소매로 닦던 눈물과 콧물까지 조금 묻은 것 같은 손을 엄마 손등에 자꾸 비빈다.

“그려 그려 암만 잘 살아야지 잘 살아야지. 그려 그려. 승희 네 맘 안다. 다 안다.”

갑자기 정우 할머니가 엄마를 안아준다. 아까 그 눈물 콧물 묻은 손으로 엄마 어깨와 등을 쓰다듬고 두드리고 쓰다듬고 두드리고 하신다.

“아이고 내 새끼. 내 새끼 아팠구나. 너도 아팠구나. 그래 네 맘이 얼마나 아프고. 그래 아프면 울어야지. 울어야 덜 아프다. 울어라. 내 새끼. 그래. 아프지. 얼마나 아프고. 가엾은 우리 승희야.”

갑자기 엄마가 운다. 정우 할머니 품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처음 정우네 밭에 왔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상상도 못 해서 엄마에게 다가가야 할지 그냥 여기 서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냥 엄마가 우니 나도 눈물이 난다. 엄마도 나랑 같은 마음인 게 느껴져서 그냥 눈물이 난다. 엄마도 나처럼 똑같이 아픈 마음이었다니 안심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으면서도 슬프고 마음이 기쁘면서도 아프다. 그리고 엄마도 나처럼 불쌍한 것 같다.

숨죽여 눈물을 흘리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정우가 집 현관문을 열고 나와 빼꼼히 본다. 나는 무슨 도둑질이라도 하다 발각된 사람처럼 급히 두 손으로 얼굴을 닦는다. 눈물을 들키면 어쩐지 창피할 것 같다. 엄마 없을 때는 엄마 있는 아이처럼 씩씩하더니 엄마가 오니까 울다니 정우가 얕게 잡아 볼까 봐 싫다. 아니 정우한테 불쌍한 아이로 보이는 건 정말 싫다. 나는 엄마랑 같이 안 살지만 그렇다고 누군가 나를 불쌍한 아이 취급하는 건 왠지 비참할 것 같다.

물론 운동회 날 소풍 날 꼭 오시는 엄마가 있는 정우가 엄청 많이 부럽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슬퍼하는 거랑 남이 나를 불쌍하게 보는 건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그러니 정우가 오늘 나를 봤다고 해서 내가 불쌍한 아이라는 소문이 퍼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있는 힘껏 눈썹을 들썩이고 눈도 찌푸려가며 입술까지 깨물면서 정우를 노려본다. 마침 윗도리가 하얀 속옷 차림이었던 정우도 깜짝 놀란 듯 현관 문을 쾅 닫곤 들어가 버린다.

민소하
국어국문학 전공후 등단, 작사가 구성작가 신문기자 등 글과 함께 살다 몬트리올로 이주했어요.
웨스트 아일랜드 거주 11년 차, 네 아이들의 육아맘으로 틈내어 글쓰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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