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경전에 보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두고 보통사람들은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정도의 단순한 뜻으로 해석하지만 석가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은 보다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즉 일체유심조라는 것은 “마음이 이 세계를 창조하는 주체이다” 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인간에게 무엇이든지 이루어 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다고 하는 우리가 두루 갖추고 있는 무한한 능력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고 본다. 생활 속에서 마음의 힘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누구나 선근을 심고 행을 잘 닦아 광대한 뜻을 세우면 결정코 위 없는 보리를 성취한다 하였다. 즉 마음을 잘 닦고 쓰면 뜻 하는 바를 성취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일체유심조는 원래 유명하여 일반인들에게도 즐겨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효와 해골 바가지 속의 물에 대한 일화로 설명하고 있다. 똑같은 물 임에도 모르고 마셨을 때는 감로수(정갈 하고 맛이 좋은 물)가 되었으나 해골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인 줄 알고 났더니 속이 뒤틀린다는 뜻으로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칼융은 우주 허공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집합 무의식으로 충만되어 있다고 했고 불교에서도 공(空)으로 충만되어 있다고 했다. 이때 공(空)이란 심(心) 혹은 불성(佛性)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우주 허공을 충만하고 있는 공(空)이란 단어는 <화엄경>에 나오는 일체유심조를 해석하는데 밑받침이 되기 때문에 공과 일체유심조를 서로 연관지어 생각해 보기로 하자.
공이란 부처가 깨진 자리에서 이 허공을 바라보았을 때 허공을 이루고 있는 실체를 언어로 표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유한 말이다. 이루고 있는 실체를 언어로 표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유한 말이다.
일본의 우에다 요시부미가 저술한 <대승 불교의 사상>에는 불교 경전의 공(空)과 같은 뜻으로 심(心)과 식(識)을 사용할 수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중국 불교에서는 공보다 심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렇다면 불자의 주장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마음(心)이 모여서 된 것이라는 말인지 오늘날 과학 지식으로 설명해 보자.
양자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우주허공은 텅 빈 것이 아니고 초양자장(superquantum field)로 충만되어 있으며 초양자장으로 충만된 우주는 하나(oneness)로 연결 돼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초양자장은 능동성정보(active information) 혹은 초의식(supermind)과 같은 뜻이 있으며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심(心)과 비슷하다.
일체 유심조의 깊은 이해는 인간과 지구 환경,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를 이해하는데도 필요하다. 살다보면 자신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것이 인간관계일수도 있고 일과 관련된 것 일수도 있다. 바뀌어 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정답은 내가 바뀌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사람은 개개인이 하나의 우주라고 했다. 내 삶을 행복하게, 맘껏 웃을 수 있게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은 곧 우주를 바꾸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