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박형준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잤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때까지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과나무의 꼭대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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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유지태하고 이영애가 나오는 ‘봄날은 간다’ 영화의 등어리에 쓴 시가 아닐까…하면서 읽는다. 단순한 문장 끝에 떨어지는 짙은 슬픔을 털어주며 ‘이제 괜찮을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은 시. 청춘이라서 그래…라고 말하려다 그만 입을 다문다. 세월이 하도 척박하니 사랑이라고해서, 젊다고 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닐거란 미안함 때문에.  

박형준 시인은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불탄 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