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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ugust 20, 2018

시월

나희덕 산에 와 생각합니다 바위가 산문山門을 여는 여기 언젠가 당신이 왔던 건 아닐까 하고, 머루 한 가지 꺾어 물 위로 무심히 흘려보내며 붉게 물드는 계곡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고, 잎을 깨치고 내려오는...

늙은 비의 노래

늙은 비의 노래 마종기 나이 들면 사는 게 쉬워지는 줄 알았는데 찬비 내리는 낮은 하늘이 나를 적시고 한기에 떠는 나뭇잎 되어 나를 흔드네. 여기가 희미한 지평의 어디쯤일까. 사선으로 내리는 비...

생활

생활 안재찬 창을 닦다 보면 마치 세상의 한 끝을 닦는 것 같다. 어둠의 문을 열고 맨 처음 세상으로 나온 아이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아침은 소리없이 움직임만으로 와서 그러나...

꽃 기형도   내 靈魂(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앓는 그대 庭園(정원)에서 그대의 온 밤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절구를 생각하며

  절구를 생각하며 이상묵 들어갈 수 없을까 그 절구 속으로 나는 다시 결코 들어갈 수 없을까 절구에 가득 보리를 넣고 어머니는 공이를 내리치면서 날 보고 보리를 저으라고 하셨다 빨라지는 공이질 넘쳐오르는 소용돌이 자꾸만 보리알들 흩어지면서 나는...

여승女僧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직녀에게

직녀에게 문병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그 여자네 집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서울의 예수

서울의 예수 정호승 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