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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3월 28, 2024

파란 달

이운진 기억을 허문다 내가 온갖 죄를 지은 저 아름다운 시절과 돌림병같던 청춘을 헐어서 기억으로도 돌아갈 곳이 없어졌으면 하고 어느 날 내가 당신을 처음 알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작은 짐승

작은 짐승 신석정   난(蘭)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 소나무 / 참나무 /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사라진 손바닥

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행복한 산책 – 노혜경

행복한 산책                                                                        노혜경 한밤중 숲으로 난 작은 길을 난 걸어갔네 내 뼈에서 살점들이 잎사귀처럼 지는 소리를 들었네 무엇이 남았는지는 모르지 아직도 뛰는 심장소리 들리지만 난 한없이 걸어 여기 너무, 너무 와 버렸으므로 펄럭이는...

님 -김수환 추기경님 영전에- 어디인지 모르고 저희들 여기 이리 서 있어요 동녘 하늘 밝아오지만 가는 길 아직도 몰라 님이여 우리 이렇게 아직도 서성입니다. 부디 손짓해 주세요 손수건을 접고 이제 걷기 시작할래요 바람이 차요 이젠 쉬세요. 김지하 모심     김지하 시인은 1973년 봄...

친구를 위하여

이해인 올 한 해도 친구가 제 곁에 있어 행복했습니다 잘 있지? 별일 없지? 평범하지만 진심 어린 안부를 물어오는 오래된 친구 그의 웃음과 눈물 속에 늘 함께...

필법

  서정임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필력으로 누군가 붓을 길게 휘둘러 놓은 궁서체 같은 강줄기를 따라 걷는다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소낙비에도 물결이 고요하다 오히려 제 안으로 흡수하는 표면의 흔들림   이 세상...

말의 재활용

  한혜영 쓰고 남은 말을 쌓아두는 야적장이 있다면 나는 삼백육십오일 창고에 갇힐 거야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송전탑처럼 가시가 돋친 부러진 삽날처럼 뒹구는 쏙쏙 알맹이만 발라먹은 게 껍질 같은 레게머리처럼 가닥가닥 배배 비틀어 꼰 반쯤...

사과

박애린 당신이 한 입 허둥지둥 베어 물고 나간 자리 남겨진 내 입술이 살며시 포개어 있다 움푹한 상처 위로 지나친 시간들은 고여 들고 당신을 붙잡고 싶듯 두 손 꼭 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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