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울화가 치밀어서 못 살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여기서 울(鬱)은 발산되지 못한 억울한 감정을 뜻하고, 화(火)는 마음의 열(熱)을 가리킨다. 즉 억울한 감정이 열로 치솟아 오름을 뜻한다. 울은 그 원이요 화는 증세인 것이다. 화는 곧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말한다.
이런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모든 증상을 울화증이라고 하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울화병 또는 화병이라고 한다.
화(火)는 한의학에서 오행(五行) 중의 하나로 각종 질병과정에 나타나는 병리적인 현상을 말한다. 즉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화가 생기고 이로 인해 신체 여러 부위에 병리 증상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실제로는 체온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화의 증상은 다양한데 두통, 가슴 두근거림, 호흡 곤란 뿐만 아니라 식욕부진, 설사, 집중력 저하, 짜증 등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정신활동의 구체적인 표현으로써 나타나는 감정과 기(氣)의 활동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장기적으로 정신적 활동이 과도하게 흥분 혹은 억울되면 기기(氣機)를 문란하게 하며 오장육부에 영향을 미쳐 마음 속의 번민, 얼굴의 붉힘, 쓴맛, 어지럼증, 불면증, 가슴답답증 등이 생기는데 이는 모두 화병의 범주에 속한다.
이 같은 현상은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각종 신경증과 유사하다. 우울신경증, 신경 쇠약증, 불안 신경증, 공포신경증, 강박신경증 등이 모두 화병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고유문화에 따른 ‘화병’을 서양의학에서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용어는 없지만 굳이 표현한다면 ‘분노증후군(anger syndrome)’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화병은 주로 마음이 원인이 되어 오는 것으로 심리적인 쇼크나 정신적인 갈등에 의해서 뇌에 기질적인 변화가 없이 일어나는 정신적 혹은 신체적인 증상을 수반하는 병으로 정신병과는 달리 현저한 인격의 변화가 없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심신증이나 신경증은 화병의 범주에 속하지만 정신 분열증 등의 정신병이나 간질은 화병에 포함되지 않는다.
화병의 한방치료는 위로 올라가는 화(火)를 내려주는 약물과 침구(針灸)요법을 이용한다. 양방에서는 항불안제나 항우울제 치료를 병행하면서 환자의 민감 반응을 돌려 주거나 차단하는 행동 요법을 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