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구분

한의학이 서양의학과 가장 구별되는 점은 아마도 서양 의학은 질병 중심적 의학인데 반하여 한의학은 인간중심의 의학이라는 점일 것이다. 인간중심의 의학이란 발병 원인이 외부적인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에 있기 보다는 환자자신의 저항력의 약화 또는 정신력의 이상 칠정손상(七情損傷)에 있다고 보며 저항력 회복에 중점을 둔 의학이다. 칠정(七情)이란 기쁨(喜), 성냄(怒), 걱정(憂), 생각(思), 슬픔(悲), 두려움(恐), 놀람(驚)으로 구성되며 간(肝)에는 성냄, 심(心)에는 기쁨, 비(脾)에는 생각, 폐(肺)에는 걱정과 슬픔, 신(腎)에는 두려움과 놀람이 속하니 각기의 감정을 오장(五臟)에 배속시킴으로써 정신과 육체를 서로 연관시켜 건강과 질병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서양의학에서도 정신적인 문제만을 다루는 ‘정신과’라는 영역이 있으나 이는 칠정과 같이 구체적으로 장기와의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단순히 정신적인 문제만 취급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의학에서는 서양의학에서처럼 인체의 각 부분을 분리하여 인식하는 것과는 달리 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는 큰 틀을 바탕으로 하고 인체의 각 부분의 조화에 초점을 맞추어 전체적인 관점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의학이라 할 수 있다.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치료법이 각각 다른데 그 중에서 결정적인 차이라고 한다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한의학은 미병(未病: 병이 나기 일보 직전의 상태)의 단계에서 병을 고치는 치미병(治未病)이고 서양의학은 이미 병이 온 질병(疾病)의 단계에서 병을 고치는 치병(治病)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의학은 변증론치(辯證論治)로서 증(證: 서양의학의 증후군-syndrome과 유사한 개념)을 변별하여 치료법을 논하므로 미병(未病)의 단계에서 치료한다. 반면 서양의학은 변병론치(辯病論治)로써 특정원인, 특정질병, 특정치료법의 원리에 따라 질병(疾病: disease)으로 판단될 때 비로서 치료하게 되니 곧 치병이 되는 셈이다.

 

서양의학에서는 한의학의 ‘증(證)’을 증상(症狀)이 아닌 어떤 두 가지 이상의 복합 증후군과 비슷한 뜻을 가진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 즉 증후군이란 말은 우연보다 빈번히 일어나는 일련의 증상(symptom)들과 징후(sign)들로 그 원인을 확실히 모르는 경우에 사용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증의 경우 양방치료보다는 한방치료가 더 적합하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증상과 징후, 질환과 질병의 정의에 대해 확실히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증상은 환자가 주관적으로 경험 또는 호소하는 장애를 말하고 징후란 의사에 의해 관찰되는 이상을 가리킨다. 질환은 환자와 그 가족들이 인식하고 경험하는 비정상 또는 불편함을 말하고 질병은 의사가 증상, 징후를 포함한 병태생리, 잠재적 원인 및 각각의 관련성을 모두 아는 경우를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의학은 질환을 위주로 치료하고 서양의학은 질병을 위주로 치료하는 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