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들여다 보면 안타까와서 그러다 쉽게 부서질 것 같아서 허수경 시를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가 않다. 늘 죽음과 별리를 곁에 두고 있는 푹 꺼지는 발 밑 같은 시.. 그러고는 아프다 말하기도 기가 막힌 시… 그래서 오히려 킥킥 거리는 시… 그렇게 혼자 한 아픈 단어를 던져보고 또 하나 다시 던져보고 기어이 혼자 가는 먼 집으로 떠났구나. 이제 허수경 시인은 세상에 없다 향년 5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