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기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하던 청춘이
어느덧 잎 지는 이 호수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처럼 떨던 것이
이렇게 잠잠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 속에 지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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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문턱에서 청춘을 보내고 조락하는 것들, 소멸하는 것들을 관조하는 자세로 내려놓는 장소는 이형기 시인의 호수인가보다. 그 곳은 슬픔이 바람에 쓸려가는 모습인가보다. 그래서 가만히 세상을 바라보며 이제 작고한 시인의 시어들을 들여다보는 일인가 보다. 이형기 시인은 잡지 ‘문예’를 통해 만 17세 약관의 나이에 등단했고, 그의 대표작으로는 ‘낙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