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산책
노혜경
한밤중 숲으로 난 작은 길을
난 걸어갔네
내 뼈에서
살점들이 잎사귀처럼
지는 소리를 들었네
무엇이 남았는지는 모르지
아직도 뛰는 심장소리 들리지만
난 한없이 걸어 여기
너무, 너무 와 버렸으므로
펄럭이는 넝마, 덜거덕거리는
오래된 절간의 목어처럼
걸려 버렸으므로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좋았네
그저 한없이 걸었다는 기억
기억 속의, 수많은 발자국과 그림자들
찬란히 빛나는 검은 뼈
어둔 밤 숲속 길을
밝히는 오래 묵은 인광
그랬었네
아마 전생의 산책이었는지도 모르지
길이 끝난 것 같은 곳에서
난 내게 전화를 건다
이젠 길이 끝난 것 같다고
펄럭이지 말고
후두둑
무너지라고
귀신이 있을까봐 무서워서 한밤중에 절대로 숲속 같은 곳에는 가지 않는 독자가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이 귀신으로 생각 된다. 죽은 저는 팽개쳐두고 나와서 인광 번득이는 숲속을 걸어가면서 스스로에게 전화를 건다. 무너지라고. 이미 뼈에서 살점이 지는 소리를 들었다면 이 산책은 전생의 기억이 맞다. 배경은 혹시 ‘월하의 공동묘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