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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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에 비해 잎새는 작고 보드랍고 둥글며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푸르스름해진다 하여 붙여진 이름 ‘물푸레 나무’. 이 나무를 닮은 여자는 그렇게 작고 여리고 약점이 많고 눈물 같고… 해서 온통 마음을 복잡하게 흔들어 놓는 여자인가보다. 아마도 이 여자는 오규원 시인에게 평생 떨궈버릴 수 없는 ‘시’ 였나 보다. 늘 물푸레나무 그림자처럼 슬픈 그래서 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보통사람의 20% 밖에 산소를 호흡하지 못하고 타계할 때까지 제자의 손바닥에 써야만 했던… 그 시라는 것, 잡았다 싶으면 어느새 형체를 버리고 빠져 나가버리는 그래서 읽어보면 살갑게 감기는 시의 운율이 더욱 안타까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