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70년대 말 종로에 있는 책방에 가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서 집을 수 있는 시집 중 하나가 김수영의 ‘시여 침을 뱉아라’였다. 본인은 시큰둥 한 반응을 보였다지만 사람들을 그를 한국의 모더니즘을 완성한 시인으로 부르고 참여시의 대표적 시인으로도 부른다. 아름다운 시보다 참된 시를 써온 그를 아직도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한다. 그의 마지막 시가 된 ‘풀’을 통해서 민중이 풀로 은유되기 시작했다. 풀뿌리 민주주의란 말이 이제는 낯설지 않게된 것이다. 한국시에서 아직도 민중은 낮은 풀인가?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생각해 보게해주는 시다. 현제 한국의 기상은 ‘흐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