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윤제림

 

싸락눈으로 속삭여봐야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진눈깨비로 질척여봐야 고샅길도 못 막으니까

저렇게 주먹을 부르쥐고 온몬을 떨며 오는 거다.

국밥에 덤벼봐야 표도 안 나니까

하우스를 덮고, 양조장 트럭을 덮는 거다.

낯모르는 얼굴이나 간지럽혀봐야 대꾸도 없으니까

저렇게 머리채를 흔들며 집집을 때리는 거다.

점, 점…… 으론 어림도 없으니까 삽시에, 일순에!

떼로 몰려와 그리운 이름 소리쳐 부르는 거다.

어른 아이 모다 눈길에 굴리고 자바뜨리며

그리운 이의 발목을 잡는 거다.

전화를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철길을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다른 세상으론,

비행기 한 대 못 뜨게 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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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눈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거 온전히 묻혀나 보자… 이런 심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심보가 이리도 후련할까? 그리운 사람 핑계김에 눈이 뭔지 확실히 질러보고 싶다면 시인이여 겨울 몬트리올에 한 번 놀러 오라고 하고 싶다. 윤제림 시인은 198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