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여인숙
안시아
어디선가 본 적 있지 않아요?
창문마다 네모랗게 저당 잡힌 밤은
가장 수치스럽고 극적이에요
담배 좀 이리 줘요
여기는 바다가 너무 가까워요
이 정도면 쓸만하지 않나요?
다 이해하는 것처럼 고개 끄덕이지 말아요
창밖으로 수평선이 넘치고
아 이런, 술잔도 넘쳤나요
오래될수록 좋은 건 술 밖에 없어요 *
갈 곳도 없고 돈도 없다고
유혹하는 것처럼 보여요?
부서지기 위해 밀려온 파도처럼
이곳까지 떠나온 게 아니던가요
여긴 정말 파도말고는 아무도 없군요
그런데 왜 자꾸 아까부터
큰 눈을 그리 꿈벅대는 거예요
파도처럼 이리 와 봐요
나는 섬이에요
대책 없는 여자와 남자가 어느 낯선 곳에서 대책 없이 서로에게 무너져 내릴 때, 젓가락 장단의 신파조에 딱 어울리는 이 풍경이 또한 가슴 한켠에 내 모습 처럼 무너져 내릴 때, 독자는 부서지기 위해 밀려온 파도의 한 끝에 휩쓸리며 세상과 화해할 준비를 한다. 안시아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수상한 꽃’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