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멀다
나호열
한 그루 나무의 일생을 읽기에 나는 성급하다
저격수의 가늠쇠처럼 은밀한 나무의 눈을 찾으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창을 열어 보인 적 없는 나무
무엇을 품고 있기에 저렇게 둥근 몸을 가지고 있을까
한 때 바람을 가득 품어 풍선처럼 날아가려고 했을까
외로움에 지쳐 누군가가 뜨겁게 안아 주기를 바랐을까
한 아름 팔을 버리면 가슴에 차가운 금속성의 금이 그어지는 것 같다
베어지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시간의 문신
비석의 글씨처럼 풍화되는 법이 없다
참, 멀다
나무에게로 가는 길은 멀어서 아름답다
살을 찢어 잎을 내고 가지를 낼 때
꽃 피고 열매 맺을 때
묵언의 수행자처럼 말을 버릴 때
나무와 나 사이는 아득히 멀어진다
한여름이 되자 나무는 인간의 마을로 온다
자신의 몸에 깃든 생명을 거두어
해탈의 울음 우는 매미의 푸른 독경을
아득히 떨어지는 폭포로 내려 쏟을 때
가만가만 열 뜬 내 이마를 쓸어 내릴 때
나무는 그늘만큼 깊은 성자가 된다
-한 그루 나무처럼 살고 싶은 사람이 어찌 하나 둘 일까. 아름드리 뿌리깊은 나무 곁에서 받는 그 편안함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시인은 나무가 온갖 뒤척임과 상처를 품고 수행을 한다고 하고 그럴 때면 나무와의 자신과의 사이가 멀다고 한다. 성자가 되고 싶은 건 바로 시인이 아닐까. 나호열 시인은 1986년 ‘월간문학’으로 세상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