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길
김명인
집 밖에 만 리를 두고
천 리 안쪽에서 그 집을 그리워한다
이 망원(望遠)은 아침부터 불볕에 이끌려 가는
거대한 초록 짐승 떼의 이동을 바라보면서
눈 시린 햇살 아래 거울을 펼쳤으나
살은 자꾸만 예전의 숙박으로 돌아서기만 해서
불현 강철 아지랑이로 묶어 놓는
집 떠난 사람의 적막 들판 까마득하게 번져 나간다
그러나 꽃은 이울었지만 뿌리가 꿈쩍도 않는
줄기에는 잎이 내려설 자리가 없다는 것
뼈를 태워 천리를 접는 통증이여,
마음 서랍에는 시든 화판만이 쟁여져 있어서
날려도 날려도 돌 속으로 주저앉는 화문(花紋)인 것을,
갓 전지된 생목이 잔액 뿜어 대는 울타리 위로
꽃 대궁 부러진 장미 한 그루 막 기어오르고 있다
겨드랑이 안쪽으로 파고드는 날개들의 집,
그예 접히는 길도 내 상처가 아니라는 것!
집과 만리밖의 중간에 시인이 있다. 날개는 몸 속으로만 자라서 세상으로 시인을 날아오르게 하지 못한다. 꽃 이운 자리에 이파리가 상처를 가려주지도 않는데 적막하게도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삶의 어디쯤에서 나그네가 되어 이리도 깊이 앓고 있는 것일까. 추석을 앞두고 만리 밖에서 집히는 시 한 편이다.
김명인 시인은 1973년 ‘중앙일보’로 세상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