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업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제목은 ‘즐거운 편지’지만 읽다보면 서러운 느낌이 드는 시다. 시인은 이룰 수 없는 사랑 안에서 오래 아팠나 보다. 시인이 내세우는 즐거움은 성숙함의 자세 속에 반어법으로 감춰진다. 영화와 수능 시험을 통해 일반에게 더욱 알려진 이 시는 가슴 속에 그리운 사람 하나 품고 사는 일이 오랜 기다림을 통해서 스스로를 깊어지게 한다고 은연중에 가르쳐준다. 사랑은 아무나 할 수도 없고 또한 아무렇게나 해서도 안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