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회 동아제약 국토대장정을 다녀와

2015년 9월 그저 대학 생활이 신기하기만 하던 내가 어느 덧 2019년 4월 졸업을 한 달 남긴 시점이었다. 내가 정착하게 될 곳이 어딘지 고민이 되었다. 이미 내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해버린 캐나다와 항상 그리움과 편안함이 남아있는 한국이 머리속에 겹쳐져 그려졌다. 그러던 와중 동아제약에서 주최하는 국토대장정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거다!’ 싶은 마음에 지원을 했다. 12명으로 구성된 12개의 조, 144명의 대학(원)생들이 포항 호미곶부터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총 573KM를 20박 21일에 거쳐 걷게 되는 국토대장정은 동아제약에서 사회 환원으로 오랫동안 진행해온 활동이다.

운이 좋게 합격이 되었고 그저 그리워하던 한국의 모습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에서 내 또래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기대가 되었다. 3일동안 진행된 현장 OT는 중학교때 갔던 야영의 확장판 같았다. ‘3분 샤워’ 라는 복병이 있었지만 텐트 치는 법을 배우고 생활 규율에 대해 적응해 나가며 예열을 시작했다. 나에게 닥쳐올 일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못하고 그렇게 나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6월28일 설레는 마음에 밤새 잠을 뒤척인 탓인지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출정식이 있을 포항 호미곶으로 이동하였다. 호미곶 넘어 뜬 해를 바라보고 있자니 괜히 몸에 생기가 돌았다. 많은 분들의 축사와 응원에 힘입어 첫 걸음을 떼었다. 첫날은 가뿐하게 넘겼지만 2일차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하루 종일 비가 왔는데 원래 내 피부가 약한 탓인지 발 껍질이 다 벗겨지고 발바닥, 발가락, 뒷꿈치 모든 곳에 물집이 생겨버렸다. 비가 와도 천막 3분 샤워는 피해 갈수 없었고 아픈 발 때문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나와서 젖은 채로 앉아있으니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지난 8년간 캐나다에서 더 절실하게 부모님이 보고싶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하게 들 때 날 다잡아 준 건 고마운 우리 조원들이었다. 폭우로 자기 몸 챙기기도 힘들 텐데 걱정해주고 도와주니 감히 내가 힘든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조원 오빠들이 가방을 들어준다고 나서고 노래도 불러주고 거기에 힘입어 한발씩 걷다보면 어느 덧 휴식지에 도착해 있고 어느 덧 숙영지에 와있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21일이라는 끝날 것 같지 않던 대장정도 어느덧 10일차에 접어들고 반환점을 지나는 시점에 7월 7일 ‘부모님과 만나는 날’ 이 있었다. 아침부터 얼마 안되는 도구로 머리도 제대로 하고 옷도 좀 더 깨끗하게 빨아서 입고 엄마 아빠를 만날 준비를 하였다. 지난 2주동안 휴대폰도 없이 목소리도 못 들었던 부모님을 만난다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와서 혼자 열심히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멀리서 부모님이 보이기 시작하니 2주동안 씩씩하게 견뎌온 게 한 순간에 무너졌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서 부모님과 손을 꼭 잡고 오후에 함께 걸었다. 지난 걸음동안 쌓인 피로가 싹 풀리고 앞으로 남은 10일을 걸을 수 있게 재충전을 한 시간이었다.

완주일이 다가올수록 몸의 아픔 보다는 마음의 아쉬움이 점점 더 커져갔다. 걸으면서 만나게 된 다양한 대원들과 소소한 생활 에피소드, 진로에 관한 고민, 서로에 대한 질문 등을 해가며 전우애를 다져 갈수록 시간을 빨리 흘러갔다. 바깥 세상에서의 고민을 뒤로하고 현재에 집중해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물론 걷다가 힘들고 몸이 아플 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집 생각이 간절히 났지만 힘든 것을 마땅히 감당하고 또 걷게끔 해준 것은 함께한 대원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길지만 짧았던 3주간의 대장정이 끝나고 마지막 완주식장을 향해 들어설 때 언제나 그렇듯 부모님이 그곳에서 웃는 얼굴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해주고 걱정했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짠했다. 단상에 올라가 완주패를 받을 때 사회자님이 세레모니를 요청하자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엄마 아빠 사랑한다고 외쳤다. 물론 굉장히 부끄러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그냥 눈 딱 감고 질렀다. 단상에서 내려온 후 마지막으로 조원들과 부둥켜안고 완주의 기쁨을 만끽하고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해주는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끈끈함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대장정이 끝나고 한달 반이 지난 지금, 나는 원래의 나의 삶의 패턴으로 돌아왔다. 샤워는 3분 이상 걸리고 걷기 힘든 거리는 조금 고민하다가 택시를 탄다. 하지만 2019년 여름 대장정은 “언제까지나 함께 건강하게”(22회 슬로건) 내 주변의 사람들과 같이 나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내가 힘들고 포기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마다 문득 떠오르게 될 소중한 추억임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동아제약 국토 대장정 구호를 외치고 글을 끝내고자 한다.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자. 우리는 하나다 국토대장정. 젊음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