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구를 생각하며
이상묵
들어갈 수 없을까
그 절구 속으로
나는 다시 결코 들어갈 수 없을까
절구에 가득 보리를 넣고
어머니는 공이를 내리치면서
날 보고 보리를 저으라고 하셨다
빨라지는 공이질
넘쳐오르는 소용돌이
자꾸만 보리알들 흩어지면서
나는 끝내 밖으로 새고 말았다
아, 그게 몇십 년 전 일이던가
어머니가 노기 띠며 나무라시던 것이
낯선 땅에 떨어진 지 벌써 까마득
보리톨 하나가 그리도 아까웠었는데
그러나 이제서야 알겠어요
어머니
공이에 얻어맞아 알갱이 되고
보리끼리 부대끼며 껍질 벗는다는 것을
그리고 또
잔돌과 섞였으니
나는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 이민을 와서 자리를 잡는 동안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과연 내가 꿈꾸던 삶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생각이 미치면 분명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시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절구’를 소재로 이국 땅에 정착한 상황을 어머니에게 걱정을 듣는 것으로 풀어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혼날 일은 분명히 아니지만 고향으로부터의 이탈은 어머니를 떠올리 때마다 목에 걸리나 보다. 이상묵 시인은 현재 토론토에 살고 있으며 토론토 한국일보 ‘석천石泉 코너’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혼쾌히 한카타임즈에 이 시를 싣는 것을 허락해준 시인께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