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노동이 성스럽다고 누가 쉽게 말했을까. 노동자가 강가에서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 표정을 떠올려 보면 그 노동의 대가가 어떠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것이다.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돌아가기 전에 그는 왜 삽을 씻을까. 희망이 오히려 아픔이 되는 시, 정희성 시인은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변신’으로 문단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