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침대

 

저녁의 침대

 

장석주

 

춘분 지난 뒤 눈발,

내가 심지 않은 모란 작약이 만발하네

계절이 미치지 않고는 저럴 수가

없네

빛과 산소가 희박한 달의 사막에 느티나무들,

눈발이 공중에 가득한 계절,

느티나무 중심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슬프게 맑네

저녁 침대에 누었더니 어린 딸이

옆에 와 앉네

놀아달라고 보채는 딸을 팔베개에 뉘는데

귀신 여럿이 침대에 드러눕네

내 안의 흑점들이 커질 때

빛과 산소가 희박한 자리에는 어린 추억의 시간들 자라고,

느티나무 우듬지 앞눈에는 배곯은 아이의 눈,

누군가 느티나무를 두드리네.

누군가 느티나무의 닫힌 방문을 두드리고

회색빛 하늘에는 발 없는 새들,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다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라지

태평양 건너에서 사는 딸의 시간과

보채는 저 어린 딸의 시간 사이로

눈발이 흩날리네

나는 발 없어 꼼짝 못하는 귀신들의 친구,

왜 느티나무는 맑고 슬픈 소리를 내는가,

왜 느티나무는 여기에 있지 않고

저기에 있는가,

왜 나는 눈발 속의 느티나무가 아니고

저녁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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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꿈을 꾸면서 죽음의 환영에 시간의 흐름을 뒤엎고 있는 것일까…이 계절과 저 계절 사이에 눈발이 날리고, 배곯은 아이와 어린 딸과 장성한 딸이 섞이면서 맑고 슬프게 누워있는 것일까, 꿈 꾸는 것일까…느티나무로 만든 저녁의 침대는 혹시 관이 아닐까…장석주 시인은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고, 1979년에 조선일보에서 시가, 동아일보에서 평론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