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로 지은 집

 

재로 지은 집

 

                            백무산

 

아름답기로 소문난 오래된 그 절

나와는 금생 인연이 딱 한 발짝 모자라

어떨 땐 눈뜨고 일없이 차를 놓쳤고

어떨 땐 차를 타고도 폭설에 갇혀 못 간 그 절

남의 인연 하나 억지 빌려 겨우 닿았을 때

절은 이미 한 발짝 앞에서 불길 속으로

훌훌 벗고 떠나가고 없었네

재로 지은 절 한 채 벗어두고

 

아쉬워할 건 뭔가,

재로 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덜컹,

밖이 나오네

 

서러워할 건 뭔가,

본래 자리에 돌려주어

산에 청산에 가득한

재로 지은 절

 

그 절 만나고 오는 길

눈이 밝아져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네

재로 된 돌부리였네

 

불교 윤리대로라면, 재가 아닌 것이 어디 있나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건 눈이 밝아져서라고요. 안과 밖을 구별하는 건 협소할 때 일입니다. 문 하나 밀어버리면 바로 큰 세상을 만나는 걸요. 문득 파블로 네루다의 말이 생각납니다.”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일 뿐인 시인 또한 죽은 시인이다.” 백무산 시인의 시가 이제 세상과 부딪혀 피 흘리기를 멈추고 스스로 깊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