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이제 이 땅은 썩어만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봄이 되어도 꽃이 붉지를 않고
비를 맞고도 풀이 싱싱하지를 않다.
햇살에 빛나던 바위는 누런 때로 덮이고
우리들 어린 꿈으로 아롱졌던 길은
힘겹게 고개에 걸려 처져 있다.
썩은 실개천에서 그래도 아이들은
등 굽은 고기를 건져올리고
늙은이들은 소줏집에 모여 기침과 함께
농약으로 얼룩진 상추에 병든 돼지고기를 싸고 있다.
한낮인데도 사방은 저녁 어스름처럼 어둡고
골목에는 고추잠자리 한마리 없다.
바람에서도 화약 냄새가 난다.
종소리에서도 가스 냄새가 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가.
꽃과 노래와 춤으로 덮였던 내 땅
햇빛과 이슬로 찬란하던 내 나라가
언제부터 죽음의 고장으로 바뀌었는가.
번쩍이며 흐르던 강물이 시커멓게 썩어
스스로 부끄러워 몸을 비틀고
입술을 대면 꿈틀대며 일어서던 흙이
몸 가득 안은 죽음과 병을 숨기느라
웅크리고 도사리고 쩔쩔매게 되었는가.
언제부터 죽음의 안개가 이 나라의
산과 들을 덮게 되었는가.
쓰레기와 오물로 이 땅이 가득 차게 되었는가.
우리는 너무 허둥대지 않았는가.
잘살아보겠다고 너무 서두르지 않았는가.
이웃과 형제를 속이고 짓밟고라도
잘 살아보겠다고 너무 발버둥치지 않았는가.
그래서 먼 나라 남이 버린 것까지 들여다가
목숨을 빼앗는 것이라 해서 이미 버릴 데가 없어
쩔쩔매던 것까지 몰래 들여다가
이웃의 돈을 울궈내려 하지는 않았는가.
몇푼 돈 거둬들이고 벌어들이는 재미에
나라는 장사꾼과 한통속이 되어
이 땅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지는 않았는가.
이 나라를 온갖 찌꺼기
모으는 곳으로 만들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안다, 썩어가고 있는 곳이
내 나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죽어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