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타는 가을강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빛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재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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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고향을 찾아 친구와 산등성이에 올라 강을 바라본다. 지난 시절 혹 마음 아린 추억이 거기 있을까. 산골 물소리같던 첫사랑의 물은 강이 되어울고나서 바다에 다다른다. 지금은 그 바다로 가기 전에 강은 소리 죽여 운다. 그것이 어찌 친구의 첫사랑뿐일까. 가을날 고향을 찾아 산등성이에 오른 시인이 미칠일은 무엇이었을까? 아름답고 쉽고 단단한 시들을 우리 가슴에 남기고 작고한 박재삼 시인. 가을이면 그의 시가 빗속에서 낙엽속에서 울고있는 것은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