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이수명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손들이 있고

나는 문득 나의 손이 둘로 나뉘는 순간을 기억한다.

 

내려오는 투명 가위의 순간을

 

깨어나는 발자국들

발자국 속에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발자국에 맞서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이 있고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육체가 우리에게서 떠나간다.

육체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우리에게서 떨어져나가 돌아다니는 단추들

단추의 숱한 구멍들

 

속으로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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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손을 잡고 우산을 들고 빗속을 걸어간다. 오른 손으로 다른 사람의 손을 잡으니 왼쪽은 비를 맞아도 오른쪽은 아니다. 이 시는 마치 그 둘 사이가 갈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것을 자꾸 반복한다. 육체가 떠나가고 단추가 떨어져나가는 때는 언제인가… 그래도 비는 오른쪽에만 내린다. 그렇게 시인은 시의 무게를 버리고, 의식을 버리고 해체되면서 언어를 빗속에 던져놓는다. 독자는 손으로 모래를 움켰다 뿌리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이 시를 읽어야 할 것이다. 이수명시인은 1994년 ‘작가 세계’로 세상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