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도정기 찾기
김행숙
이 상처에는 서사적인 고통이 있는 것 같고,
어느 날의 기억력은 술집에서 얼결에 동석하게 된 낯선 사람과 기울이는 술잔 같고,
인생에 홀연히 나타난 한 시간 동안의 친구 같고,
우리가 새빨간 거짓말과 사실을 도무지 분별할 수 없는 사이라면 간신히 진실을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빨간 약을 구해줘, 이 말은 암호 같고, 우스갯소리 같고,
어디선가 어두운 목소리와 밝은 목소리가 유혹한다면 너는 어두운 목소리에 끌릴 것 같고,
그래서 말을 하다가 너는 어느덧 그림자와 자리를 바꿀 것 같고,
벽의 그림자들은 비슷비슷해서 내 것과 네 것이 바뀐 것 같고,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그림자들과 싸우는 법이지, 끌끌끌, 너는 혀를 끌고 새벽에 나가는 사람 같고,
너의 혀가 길다면 조금 핥아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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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인의 시에는 감춰진 슬픔의 잔해들이 반짝거리면서 단어와 단어가 서로 연결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 훌쩍훌쩍 울고 있는데 옆에서는 배가 고파 우나 보다, 제 성질에 못 이겨 우나 보다 혹은 무서워 우나 보다… 제 멋대로 이해하게 내버려두고 있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마음에 바를 약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마저도 제멋대로 빨간 약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무려면 어떠랴, 누가 노래를 일일이 이해하며 듣는 것도 아닌데…
김행숙 시인은 1999년 ‘현대 문학’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사춘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