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일기 (故 김근태 고문님 영전에 바침) – 강미영

나는 그를 모른다

왜 그가 붙들려 가는지

1990년 5월14일자 한겨례 신문 1면의 김근태 씨

수 십 아니 수 백의 험악한 장정들에 둘러싸여 낚아 채여서

개돼지처럼 그가 또 도살장으로 가고 있다

 

왜 그는 늘 그렇게만 살고 싶을까

왜… 그는 늘 그렇게만 사는 것일까

 

모른 척 모르는 척 적당히

아아 적당히 눈 감고 살았으면

엊그제 어린이 날 아이들 손 붙들고 솜사탕 빨면서

롯데월드 자연농원 함박웃음 날리며 구경했으면

젊은 아내랑 그의 아이들

얼마나 얼마나 행복했을까

 

일간지 제1면 대문짝만 하게 나붙은 이름 하나

전두환의 노태우의 아니 모든 독재자의 역적, 김근태

그의 아내는 아이들에게 아빠를 무어라 설명할까

 

세상은 풍요로운 곳이란다 행복한 곳이란다

어둠이란 없단다 그저 밝고 환하단다

훔쳐서라도 빼앗아서라도

제 새끼에게만은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옷만 입히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시커먼 시커먼 아비들 그 속에서

그의 슬픈 아내는 무어라 가르치나…. 세상은

아니 아빠는 저처럼 아프지만 하얗단다 환하단다?

 

나는 그를 모른다 당신도… 그를 모른다

참 하릴없이 왜 그가 늘 붙들려만 가야 하는지

아아 모른다 모른다 우리는

흉흉한 어둠이 떼지어 몰려와도 몰라 몰라

한 장에 10만 원짜리 실크 팬티 입으면서

내 집에 부리는 식구 한 푼 월급이 아까운

참 더러운 당신

 

그리고 나는

 

2011년 12월30일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이 별세했다.  그동안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 병을 앓아왔다고 전해진다. 한국의 민주화의 씨앗을 뿌린 그를 고문한 이근안은 목사가 되어있고 이 부조리함에 나는 혼란스럽다. 우리 모두 그에게 빚이 있다는 생각을 어제쯤 지울 수 있을까. 이 시를 흔쾌히 지면에 싣게 허락해주신 강미영 시인께 감사드린다. 강미영 시인은 서울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세상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