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은
알지
누군가를 고즈넉이 그리워하며
미루나무 아래 앉아 다리쉼을 하다가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알지
자신을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격정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를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분노라는 것을
그 소나기에
가슴을 적신 사람이라면 알지
자신을 속이고 사랑하는 이를 속이는 것이
또한 얼마나 쓸쓸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일도 만만치 않아서 오만 가지 번뇌 뒤끓듯이 파편이 튀어서 피 흘린다.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마음을 숨기는 중인가보다. 그래서 스스로를 분노에서 쓸쓸한 아름다음으로 옮겨가는 중인가보다.
곽재구 시인은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사평역에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