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 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른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에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시인이 절필을 선언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않고 발표하지 않겠다’고 했다. ‘서울 가는 전봉준’으로 등단한 시인의 패기가 느껴진다. 국정원의 농간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그냥 바라만 봐주는 착한(?) 국민의 나라에서 시인의 심정은 ‘참담’하다고 했다. 시란 무엇인가? 시가 과연 시대의 아픔에 위로가 되긴 되는 건가? 지금 생각 있는 많은 사람들은 절망한다. 한 장 연탄 만도 못한 자괴감이 내리누르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