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남아 있는 야생의 습관

 

여전히 남아 있는 야생의 습관

 

이병률

 

서너 달에 한 번쯤 잠시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오는 습관을 버거워하면 안된다

 

서너 달에 한 번쯤, 한 세 시간쯤 시간을 내어 버스를 타고 시흥이나 의정부 같은 곳으로 짬뽕 한 그릇 먹으러 가는 시간을 미루면 안된다

 

죽을 것 같은 세 시간쯤을 잘라낸 시간의 뭉치에다 자신의 끝을 찢어 묶어두려면 한 대접의 붉은 물을 흘려야 하는 운명을 모른 체하면 안된다

 

자신이 먹는 것이 짬뽕이 아니라 몰입이라는 사실도, 짬뽕 한 그릇으로 배를 부르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타이르는 중이라는 사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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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밑바닥에 서러움을 깔고 있다. 그렇다고 나는 서럽다고 징징거리지 않고 그 서러움을 가두고 있다. 갇힌 서러움은 단어 사이에 숨죽이고 있다. 숨죽이고 있으니 더울 애절하다. 혼자 훌쩍 집을 나서서 짬뽕 한그릇 먹지 않으면 피눈물 흘리며 목놓아 울것 같아서 그 울음이 터지기 전에 스스로를 타이르는 중이다 시인은.    

이병률 시인은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