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
류기봉
채마밭에 알타리무꽃이 진다
아버지의 손등으로 떨어지는
가을 햇살
내가 여주 은모래 강가에서 만나 눈시울 젖던
어둠 속을 뛰쳐나온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자 내 목숨이 흔들린다
밭두렁에 고꾸라진 땀에 젖는
농부의 어깨 위에서 출렁이는
나비 저 슬픔의
저무는 해
한강을 건너갔던 취기의 여우비
갸날픈 내 어깨를 허물고 있다
내가 여름 내내 놓쳐버린
하이얀 바람
조간의 머릿기사 ‘재정경제원 장관 농업투자예산 대폭 삭감’
또 내 목숨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늘날 전세계 식품공급의 70프로에 해당하는 각종 농작물 종자 특허는 천 여건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무심코 씨앗을 심어 재배한 농작물이 거대한 회사에 속한 종자라면 로얄티를 지불하지 않았다고해서 손해배상을 해줘야하는 거다. 농작물 종자특허는 약 20년 안팍에서 일어난 일이다. 식량이 무기가 되는 날을 두려워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월가의 시위를 보면서, 마이클 무어의 ‘Love story of capitalism’ 영화에서 자본이 천부인권을 짖밟는 21세기 만행이 기막히다. 언제부터 땅과 식량이 몇 몇 사람의 소유였던가? 한미 FTA의 소식에 또한 시인의 근심이 더욱 무거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