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규
나는 쌈을 즐깁니다
재료에 대한 나만의 식견도 있죠
동굴 속의 어둠은 눅눅한 김 같아서 등불에 살짝 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낱장으로 싸먹는 것들은 싱겁죠
강된장, 과카몰리* 등 다양한 <쌈장 개발의 기원>
봄철, 입맛이 풀릴 때
나는 구멍이 송송, 뚫린 배춧잎을 새로운 쌈장에 찍어먹습니다
달콤한 진딧물 감로를 섞어 만든 장
어떤 배설물은 때로 훌륭한 식재료가 되죠
두꺼운 것들은 싸먹기 곤란합니다
스치면 베이는 얇은 종잇장에도 누명과 모함은 숨겨있죠
적에게 붙잡히면 품속의 기밀을 구겨 한입에 삼켜요
무덤까지 싸들고 가는 비밀도 있습니다
어둠의 봉지에 싸인 이 밤
구멍 난 방충망은 경계가 소홀합니다
누군가 달의 뒷장에 몰래 싸놓은 알들
나는 긴 혀로 나방을 돌돌 말아먹는 두꺼비를 증인으로 세웁니다
사각사각, 저 달을 갉아먹는 애벌레들
수줍은 달을 보쌈해간 개기월식
삼킬 수 없는 과욕은 역류되기도 하죠
보름달을 훔쳤다는 나의 누명이 시간의 부분식으로 벗겨지고 있습니다
* 아보카도를 으깬 것에 양파, 토마토, 고추 등을 섞어 만든 멕시코 식 쌈장
개기월식을 보는 시인은 애벌레가 이파리들을 갉아먹는 것과 자신이 쌈을 싸 먹는 것을 겹쳐 보여주면서 어둠이 침범하는 달의 영역을 아삭 아삭 베어먹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이 풀어 놓았다. 거기다가 쌈과 보쌈을 엮는 언어의 유희마저 깜찍하다. 달을 보쌈했다는 누명을 월식이 끝남과 동시에 벗었다고 표현하는 시인의 상상력에 감탄하다가 혼자 보기 아까워서 슬쩍 퍼왔다. 조창규 시인은 1980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이 시로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