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나희덕

산에 와 생각합니다

바위가 산문山門을 여는 여기

언젠가 당신이 왔던 건 아닐까 하고,

머루 한 가지 꺾어

물 위로 무심히 흘려보내며

붉게 물드는 계곡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고,

잎을 깨치고 내려오는 저 햇살

당신 어깨에도 내렸으리라고,

산기슭에 걸터앉아 피웠을 담배연기

저 떠도는 구름이 되었으리라고,

새삼 골짜기에 싸여 생각하는 것은

내가 벗하여 살 이름

머루나 다래, 물든 잎사귀와 물,

산문山門을 열고 제 몸을 여는 바위,

도토리, 청설모, 노란 풀꽃뿐이어서

당신 이름뿐이어서

단풍 곁에 서 있다가 나도 따라 붉어져

물 위로 흘러내리면

나 여기 다녀간 줄 당신을 아실까

잎과 잎처럼 흐르다 만나질 수 있을까

이승이 아니라도 그럴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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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희덕 시인이 여기서 말하는 당신을 알게되는 순간 이 시는 가을을 지나 가을의 이름으로 열린 블랙홀을 만난다. 사색의 파편으로 빛나는 언어들 속에서 독자들은 스스로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리라.  그래서 만나는 당신이 억겁을 흘러내리는 인연이라면 스스로 한 장의 낙엽, 한 송이 가을꽃이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가을, 유려한 시 한편이마음을 사로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