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규
수척한 아버지 얼굴에 박혀 있는 검은 별을 본다
겨울은 점점 깊어가고
잔바람에도 뚝뚝 살을 내려놓는 늙은 감나무
열락과 고통이 눈 속으로 젖어 드는 늦은 저녁
아버지와 시래깃국에 밥 말아 먹는다
세상 어떤 국이
얼룩진 자국 한 점 남김없이 지워낼 수 있을까
푸른 빛깔과 향기로 맑게 피어날 수 있을까
또 다른 어떤 국이
자잘한 행복으로 밥상에 오를 수 있을까
저렇게 부자간의 사랑 오롯이 지켜낼 수 있을까
어느 때라도 “시래깃국” 하고 부르면
일흔이 한참 넘은 아버지와
쉰을 갓 넘긴 아들이 아무런 통증 없이
공기 속을 빠져 나온 햇살처럼 마주앉아 있으리라
세상은 시리고도 따뜻한 것이라고
내 가족 이웃들과 함께
함박눈을 밟고 겨울 들판을 휑하니 다녀와서
시래깃국 한 사발에 또다시 봄을 기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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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처럼 겨울이 길고 추운 몬트리올에서 뜨끈한 시래깃국 한 사발 먹을 수 있다면, 그것도 아버지와 마주 앉아 먹을 수 있다면….그건 아주 특별한 행복이 될 것이다. 어쩐지 이 시에서 느껴지는 시인의 아버지는 부유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사람이고 그 아들인 시인도 받은 그대로 아버지를 닮았을 것만 같다. 좋은 부모 밑에서 효자 난다고 했던가. 겨울의 한복판에서 따뜻한 시 한편으로 마음을 녹여보자. 양문규 시인은 1989년 ‘한국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으로 ‘집으로 가는 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