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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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이민하

 

새들이 나란히 앉아 지붕의 색을 섞고 있다

나무들이 기어올라 마지막 얼굴까지 번지도록 오래오래

표정을 서로 바꾸는 열두 마리

어두워지자 나는 이름으로 구분했다

아침이 왔고, 내일은 오늘이 되었다

몇 마리가 빠지고 대열이 흐트러져 있었다

나는 다시 이름을 붙여 주었다

천둥은 잎새가 되고 왈츠는 추억이 되고

우주는 간밤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공중엔 이름 없이 떠 있는 새들이 더 많다

그들 중 하나가 빠르게 눈앞을 지나갔다

덜 마른 빨랫줄이 흔들렸다

빗방울 몇 개가 날아 새들이 묻힌 화단에 심어졌다

이 시를 읽다 보면, 드뷔시 이후의 뉴웨이브 음악이나 아니면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처럼 그동안 배워왔던 이론에 마구 물감을 뿌리며 담벼락에 그리는 팝아트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렇게 문학도 변하는구나… ‘아침이 왔고, 내일은 오늘의 되었다’ 고 쓴 것 처럼 앞뒤를 바꾸고 시간의 순서를 바꾸며 그동안 순응했던 모든 질서에 엿을 먹이는데도 어쩐지 참신하고 매력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시인의 젊음이 부럽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패기 또한 기특하다.

이민하 시인은 2000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고, 시집으로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