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문수

조정인

 

허리께에 닿는 낮은 대문, 집둘레는 빨강 노랑 자잘한 꽃들로 가꾸어져 있다 떠오르다 가라앉곤 하는 섬 하나, 심하게 다리 저는 남자가 그리로 가더니 한참을 구겨앉는다 고개를 꺾고 꽃을 들여다보는 어깨 위로 투명한 얼룩 같은 햇살이 어룽진다 나는 남자가 일어서 멀어질 때까지 먼발치에 기다린다 그 자리로 가 앉아볼 요량인데 망설이다 그만둔다 그의 슬픔은 문수(文數)가 커서 내게는 아무래도 헐렁할 것 같다 한 꽃나무가 한 꽃나무를 위해 그러는 것처럼* 나는 참 이상하게 절뚝이며 길을 재촉해갔다

*이상 ‘꽃나무’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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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인 시인의 언어는 틈새 감성을 공략한다. 무심하게 지나쳐버리기 쉬운 몸짓 하나, 그림자 하나…에 그는 얼룩을 얹고 때로 털어내면서 상투적 배경을 자신의 감각으로 재탄생 시킨다. 그의 시들은 살얼음 어는 숲의 가장자리에 살을 베이듯이 아름답고 아프다. 이 시에서처럼 슬픔에서 칫수를 찾아내는 기량을 갖기 위해 그는 또 얼마나 많은 시를 써댔을까.

조정인 시인은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장미의 내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