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으로 가는 길
정호승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갈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한간에 정호승을 기다림의 시인이고 슬픔의 시인이라고 부른다. 그의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보면 더욱 그렇다. 슬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이 어찌정호승 뿐일까.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는 모든 예술가들이 슬픔으로 연명하며 자신만의 길을 가지 않는가. 슬픔은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하고 그의 앞으로 지나치며 지는 잎새 하나를 얻기위해 버림받기도한다. 하지만 시인은 끝내 슬픔을 떠나지 못한다. 분노를 허무는 정호승의 슬픔은 칼보다 강하다. 변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