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백무산
내가 사는 산에 기댄 집 눈 내린 아침
뒷마당에 주먹만한 발자국들
여기 저기 어지럽게 찍혀 있다
발자국은 산에서 내려 왔다 간혹
한밤중 산을 찢는 노루의 비명을
삼킨 짐승일까
내가 잠든 방 봉창 아래에서 오래 서성이었다
밤새 내 숨소리 듣고 있었는가
내 꿈을 다 읽고 있었는가
어쩐지 그가 보고싶어 나는 가슴이 뜨거워진다
몸을 숨겨 찾아온 벗들의 피 묻은 발자국인 양
국경을 넘어온 화약을 안은 사람들인 양
곧 교전이라도 벌어질 듯이
눈 덮인 산은 무섭도록 고요하다
거세된 내 야성에 피를 끓이러 왔는가
세상의 저 비루먹은 대열에 끼지못해 안달하다
더 이상 목숨의 경계에서 피 흘리지 않는
문드러진 발톱을 마저 으깨버리려고 왔는가
누가 날 데리러 저 머나먼 광야에서 왔는가
눈 덮인 산은 칼날처럼 고요하고
날이 선 두 눈에 시퍼런 불꽃이
뚝뚝 떨어지고 그는 어디로 갔을까
백무산 시인은 1984년 ‘민중시’1집에서 ‘지옥선’등을 발표하면 시작했다. 그는 문학성을 갖춘 노동시인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꿈꾸는 시인,하지만 악몽을 꾸고 있는 시인… 그의 창가에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내게 친밀하지만 소식을 전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람일까… 백무산 시인의 시들을 읽으며 우리가 그에게 진 빚은 과연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닌 것일까. 내 입에 밥이 들어갈 때 누군가 그 밥을 위해 목숨을 걸지는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