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이름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 시선집’에 실려있는 이 시는 명동의 어느 술집에서 시인이 읇자, 친구 김진섬이 즉흥적으로 곡을 붙여서 노래로서도 일반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다. 1956년 전쟁이 남기고간 상처를 가슴에 담고있던 젊은 날의 초상은 이토록 서럽웠나보다. 그때문일까, 31살의 나이로 요절한 이유가. 이시대의 청춘은 또 어떤 모습으로 아파하고 있는 지 눈여겨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