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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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마을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젖을 짜는 사람이 있고, 뿔 없는 짐승과 초록빛 얼굴의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있을 뿐이다.
샤갈의 마을에 보리 이삭이 트는지 궁금해서 한 남자가 긴 낫을 들고 가고 있다. 집들은 옹기종기 모여 있고 한 집 문 안에서 얼굴만 커다란 여자가 바깥을 향하고 있다. 여기에 김춘수는 눈발을 흐트러트린다. 샤갈에게는 마을뿐이지만, 김추수는 이 마을에 눈을 내린다. 독자들은 찬연한 마을에 들어가 눈을 밟고 불을 쪼인다. 누가 있어 감히 이 즐거움을 말리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