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에게 밟히다

 

박정원

 

새들도 흔적을 남기나

꽃이 피면 꽃길을 내고

꽃이 지면 그 길을 물고 앉는다

길은 길이나 갈 수 없는 길,

지상으로 끌어내린 새들의 길을

징검다리 건너듯

포롱포롱 따라가다가

밥그릇을 들고 위로만 치닫던 길

바람에게 차인 길을 트고

밤마다 뭇별 무릎에 뉘였던

수많은 내 발자국들, 단청을 입힐 때마다

새 한 마리 날아왔다 날아가고

몇 날 며칠 뒤쫓다가

내 발자국보다 몇 십 배나 작은 새 발자국을 보고

비로소 되돌아보던 길,

사라진 길들은 저마다 깊은 모퉁이에서 숨을 쉰다

또 다른 새가 나를 밟고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새 발자국 하나 지우고 내 발자국 하나 지우는데

길 하나를 물고 내려오다 다시 하늘로 치닫는 새

한사코 매달리는 나를

희부연 공중에다 사정없이 흩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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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시인의 또 다른 모습이고 순수하게 간직하고픈 내면의 성찰이다. 그리하여 때로 밟히기도 하고 시인을 공중에 흩뿌리기도 한다. 시를 쓰는 동안 스스로의 정수만을 건져 쓰는 것처럼 새는 시인에게 안타깝게 실현하고 싶은 꿈이다. 박정원 시인은1998년 ‘시문학’으로 등단했고 시인정신작가상을 받았다. 이 시는 시집 ‘뼈 없는 뼈’ 에 실려 있다.